♣ 비속의 두브르브니크 투어를 마치고 버스로 이동중 어느새 비는 멈춘다 이곳은 지중해성 기후로 믿을 수 없는게 날씨니 우산 은 항상 챙기는게 좋다고 하던 가이드 말처럼 맑은 하늘로 바뀐 內戰의 도시, 92~95년도 까지 전쟁을 치룬 역사의 땅 보스니아를 찾아간다. (4/29)
*보스니아 공식명칭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Bosnia and Herzegovina) 인구 : 3,860,000 면적 : 51,209 수도 : 사라예보 정체·의회형태 : 연방공화제, 다당제, 양원제 국가원수/정부수반 : 3인 공동대통령/ 총리 공식 언어 : 보스니아어 독립년월일 : 1992. 3. 3 화폐단위 : 마르카(marka/KM) 종교 : 이슬람교 40%, 세르비아정교 31%, 로마가톨릭 1...
▼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였으며, 보스니아 내전의 생생한 모스타르 세계문화유산인 터키식 다리 스타리 모스트(오래된 다리)
'화려한 황제' 쉴레이만이 건설한, 과거와 미래를 결합해 주는 다리 네레트바 강 위에 높이 치솟아 올라 걸려 있는 훌륭한 돌로 된 이 아치는 단 하나의 건축학적 걸작으로서 보스니아의 역사를 감싸고 있다. 스타리 모스트(오래된 다리)는 1566년 발칸 전쟁 이후 오스만 제국의 '화려한 황제' . 쉴레이만의 명에 따라 건설되었다
※ 대세르비아를 앞세운 세르비아 공화국은 1992년 20세기 최악의 인종청소가 자행된 보스니아 내전을 일으킨다. 무슬림은 세르비아 민병대가 퇴각하자, 이번엔 대크로아티아를 앞세운 크로아티아계 손에 인종청소를 당한다. 모스타리는 이때 크로아티아계의 포격으로 1993년 11월 붕괴됐다. 내전 때 3000여명이 학살되고 1500여명이 실종됐으며, 시민의 절반이 도시를 떠났다.
▼ 모스타르의 중심상가 지역 길바닥에 촘촘히 박힌 반들반들한 돌이 인상적이다.(천천히 걸으며 상품도 구경하라는 뜻일까?)
▼ 92~95까지 4 년여에 걸쳐 벌어진 전쟁의 상흔 그대로 보존하여 후세의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주기위해 철거치 않는다고 한다.
▼ 성모의 발현지로 유명한 메주고리예로 이동 메주고리예는 슬라브어로 ‘산과 산 사이의 지역’이라는 뜻으로, 실제로 해발 200미터 높이의 산악에 위치하고 있으며, 교구 전체 인구가 약 4300명 정도다.
※ 1981년 6월 여섯 아이들이 마을 외곽의 크르니카라는 언덕 위에서 성모 마리아를 보았다고 주장해 세계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다. 처음 목격자는 두 명이었으며, 이후 수 차례에 걸쳐 여섯 명의 아이들에게 나타나 기도와 평화의 메시지 등을 전했다는 주장이다.
▼ 평화의 성모상
※ 아이들의 성모 발현 주장을 놓고 가톨릭 교회와 과학 및 의학계에서 다양한 조사가 진행되었으며, 현재까지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은 부정적이라 한다. 가톨릭 교회의 공식 입장이 성모 발현을 부정하고 있지만, 일반 가톨릭 신자들은 이곳을 성모발현 성지로 인정하는 경향이 짙다 한다.
▼ 메주고리예 교구교회 처음 교회가 들어선 것은 1897년이지만 지반이 약해 무너지고, 2차 대전 후 다시 짓기 시작하여 1969년 1월 19일에 완공되었다.
▼ 교구교회 야외 광장에 미사중인 수만명의 순례객
▼ 파노라마로 잡은 순례객들
▼ 십자가산의 콘크리트 십자가 14톤의 콘크리트를 사용해 만들었으며 해발 520미터 높이의 산 위에 서 있다. 순례중인 신자들은 이곳 산 정상까지도 관람한다는데 우리는 주성당 근처에서만 관광한다. (줌으로 최대한 당겼지만 십자가는 보일듯 말듯하다.)
▼ 한적한 시골이 였는데 성모 발현지로 세상에 알려지면서 관광객이 늘어 1981년 이후 수천만 명이 이곳을 다녀갔고, 메주고리예의 관광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방문객이 많아지자 작은 산골 교구 메주고리예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현재는 주차시설과 숙박시설, 상가가 들어서 제법 관광지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 (우리가 머믈렀던 BROTNJO 호텔)
▼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로 이동 (4/30) 이슬람풍의 거리와 시장, 다수의 모스크·성당 등이 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1992년 3월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분리·독립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이슬람계 ·세르비아계·크로아티아계 민족 간의 분쟁으로 사라예보는 내전의 중심지가 되었다. 여자단체전을 석권하여 처음으로 한국탁구가 세계제패를 이룬 곳이다. 그리고 1984년에는 이 도시에서 제14회 동계 올림픽이 열리기도 했다.
▼ 최근에 단장을 끝냈다는 사라예보 국립도서관(구 시청사)
▼ 총탄을 쏘았던 장소(카페)를 그대로 복원 한 곳(낮으막한 우측 빨간 지붕)
▼ 라틴다리 1914년 6월18일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세르비아 청년에 의해 암살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현장.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 있는 다리로, 다리 길이 39m, 너비 4.3m, 높이 2.4~3m 도심 사이를 흐르는 밀라츠카강Miljacka의 지류에 있는데,오스만시대에 세워진 다리이나. 1791. 11. 15일 대홍수 때에 다리가 크게 붕괴되자 당시 사라예보에 오스만 상인들이 돈을 모아 복구를 하였는데 현재 이 지류에는 21개의 다리가 세워져 있다. 다리 형태는 석교이나 교각 기초와 기석은 대리석, 아치는 테라코타를 이용하여 세개의 아치와 교각에 다시 원형통을 만들어 놓은 게 특이하다.
▼ 옛날 대상들이 머물렸다는 숙소(지진으로 파괴된 건물과 발굴중인 유적지)
▼ 보스니아 정교회(Bosnia Orthodox church) 보스니아의 정교회는 1868년에 완공된 뉴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다.
▼ 자유공원 행동으로 체스게임을 하는 사라예보의 노인들
▼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이보 안드리치의 흉상]
▼ 사라예보 기독교의 상징인 로마 카톨릭 대성당 신시가지에 자리하고 있는 로마 가톨릭 대성당은 1889년에 건축된 신 로마네스크와 고딕양식의 건물로 보스니아 로마 가톨릭 성당 중 가장 큰 규모이다.
▼ 이슬람 교도들의 안식처 [가즈 하스레브베이 모스크]
▼ 모스크 건물을 기증한 공로로 사후 시신을 안치해둔 곳
▼ 모리차한(Morica'han) : 16세기 후반이나 17세기 전반에 건축된 카라반(Caravan)의 숙소로 사용된 건물(대상들의 숙소)
▼ 사라예보의 상징인 세빌리 샘 바슈카르지아 중앙광장에 1891년에 건축된 샘으로 구시가의 상징과도 같은 곳으로 비둘기가 가득한 세빌리의 모습은 사라예보 엽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장면이다.
▼ 이 샘물을 마시면 다시 사라예보를 찾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현재는 지하수가 오염되어 잘 마시지 않는단다.
▼ 자갈로 덮힌 터키 직인들의 거리 바슈가르지아(장인 거리)
▼ 바슈카르지아 중앙광장의 과일가게 (우리나라의 과일과 별반 다른게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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