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Romania) -인구 : 21,577,000 -면적 : 238,391 -수도 : 부쿠레슈티 -정체·의회형태 : 중앙집권공화제, 양원제 -국가원수/정부수반 : 대통령/ 총리 -공식 언어 : 루마니아어 -독립년월일 : 1881 -화폐단위 : 루마니아레우(Romanian leu) -종교 : 루마니아정교 87%, 가톨릭 5%, 개신교 3.5% 발칸 반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는 국가로 1944년 소비에트 군대에 의해 점령당했고, 1948년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의 위성국가로 공산주의의 통치를 받았으나, 1989년 루마니아 지도자 니콜라이 체우셰스쿠 정권의 몰락으로 그 체제는 막을 내렸다. 2004년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했고, 2007년에는 유럽연합(EU)의 회원국이 되었다. 산림 자원도 많고 금과 은의 매장량도 많고 원유 생산국에 비옥한 넓은 평야지대도 있어 농업과 목축이 발달되었으면서도 부패한 무능 정부로 해서 가난하게 살고 있다. 비극적 생을 마친 독재자 차우세스크와 체조의 요정 코마네치의 비극적인 삶이 있는...
▲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 시내 투어를 마치고 이번여행중 가장 긴 버스 이동 8시간! 루마니아의 "시비우"에 밤 8시 반 도착,
▼ 카르파티아 산맥의 북쪽 기슭에 위치하는 드라큘라 성으로 잘 알려진 "브란성" 루마니아인들의 영웅이었던 블라드 드라큘라는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게 스토커의 드라큘라와 동일시되었다. 더불어 브란성은 드라큘라가 실존했던 증거인양 관심을 모았지만 흡혈귀 전설에 어울리는 음습한 공간이라기보다는 동화 속에 나오는 낭만적인 성에 가까운 모습이다.
▼ 입구에 세워진 커다란 석조 십자가
▼ 절벽 위에 아스라히 자리 잡고 있는 요새이자 성이며 왕비 별장이기도 하고 세관이었던 브란성
▼ 1460년경 잠시 이 성에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되는 왈라키아 공국의 군주 블라드3세 바사라브는 재위 기간에 적과 범죄자를 가혹하게 다뤄 블라드 '드라큘라' 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는데, 1897년 아일랜드 작가 브램스 스토커가 흡혈귀 소설 (드라큘라)를 쓰면서 블라드3세를 가상모델로 삼았고 오늘날의 '드라큘라' 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주의사항중 닫혀진 창문은 억지로 열려 하지 말고, 좁은 미로에서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걸으라 한다. ㅋㅋ
▼ 왕비 마리아는 난봉꾼 남편 덕에 많은 날들을 독수공방 외로운 날들을 보내다 결국은 수녀가 되었다고 한다 왕비의 일생도 결국 한 남자때문에 수녀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참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 고문을 하는 형틀과 마녀 재판에 사용된 저울, 사형이 집행되는 사진(右下) 블라드 3세는 오스만제국 군대를 물리쳐서 루마니아인들을 지킨 위인으로 존경 받고 있었으며 그래서 용의 아들이라는 뜻의 '드러쿨레아'라고 불렸다한다. 하지만, 그가 재위할 동안에 적과 범죄자를 가혹하게 다뤄 악명을 떨쳤는데 죽인 적과 포로들은 날카로운 꼬챙이로 항문에서 창자를 관통시켜 죽이는 등 공포정치를 했다 한다. 그 걸 그림으로 저렇게... 섬뜩하지 않을 수 없다.
▲ 좁은 방들이 수 없이 많았으며 방마다 좁은 비밀 통로가 연결 되어 있어 미로를 한 바퀴 돌고 나온 느낌이다. 소설과 영화 속 배경이 되면서 유명 해진 이곳은 실제로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작은 마을의 古城 일 뿐이다. 브란성은 루마니아의 영웅이었던 블라드3세(체페슈)와는 역사적으로 무관하지만 실존했던 사람 그리고 성이라는 이유로 발칸반도 최고의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 브란성의 가장 높은 곳의 테라스에서 보이는 풍경은 산과 산 사이에 길을 내고 그 양옆으로 집이 있는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한 모습. 이곳은 눈이 많이 내려 빨리 땅으로 떨어트리기 위하여 지붕을 급경사로 만들었다 한다.
▼ 카르파티아 산맥의 루마니아 최고의 산악 휴양도시인 시나이아로 이동 펠레슈 성 가는 길 입구에 늘어선 호텔과 가게들
▼ 네오르네상스 양식으로 설계된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인 펠레슈 성 루마니아 중부 프라호바주 시나이아에 있는 왕가의 여름 별궁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축물 현지 가이드 왈 "반드시 본전을 뽑고가며 안보면 후회하는 곳이라고 자부한다" 며 이동중인 차안에서 수차례 강조한바 있어 기대반 설렘반으로 입장을 기다린다. 오늘도 관람객이 많이 모여 있고, 오후 4시 이후에는 입장 할 수없다는 규칙이 있다며 묘한 수순으로(?) 가까스로 입장한다. (내부촬영을 하려면 10유로의 촬영권을 구입하여야 한다.)
※현재 독일 땅의 남부에 있는 지크마링겐에서 태어난 카롤 1세는 1881년 새로이 태어난 루마니아 왕국의 초대 왕이 되었다. 차우셰스쿠의 공산주의 정권이 지배할 동안 이 지역 전체는 닫혀 있었고 아름다운 성도 거의 사용되는 일이 없었다. 1989년 12월에 일어난 혁명 이후 차우셰스쿠는 타도되었고, 펠레슈 성은 다시 관광객들에게 문을 열어 성에 있는 많은 눈부신 방들과 가치 있는 소장품들을 선보이게 되었다.
※ 경관이 수려한 카르파티아 산맥의 아름다운 풍경과 아담한 농장들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펠레슈 성은 목재와 석재, 벽돌, 대리석을 이용하여 독일 신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다. 독일 건축가 빌헬름 도데레 이후에는 체코의 건축가 카렐 리만이 설계를 맡아 160개가 넘는 방과 동화에 나올 법한 탑들, 뾰족한 첨탑을 지닌 왕궁을 디자인해 냈다. 별도로 지어진 건물 하나에는 전력 발전소가 들어서 있어 펠레슈 성은 유럽 최초로 완전히 전기에 의해 조명이 밝혀지는 성이 되었으며, 최초로 중앙난방을 사용하는 성이 되었다.
※ 펠레슈 성은 일곱 개의 테라스에 둘러싸여 있는데, 테라스에는 이탈리아 예술가 로마넬리가 조각한 동상이 서 있으며 돌로 된 우물, 꽃병, 카라라 대리석 조각 등이 새겨져 있다.
▼ 정원에서 바라본 주위 풍경
▼ 10유로의 내부 이 성의 이름이 된 펠레슈 시냇물은 안뜰을 통해 흐르는데, 안뜰 안에는 분수도 하나 있다. 성 안에는 170개의 방이 있는데 모두 사치스러울 만큼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마이센과 세브르 도자기, 금은으로 만든 접시, 크리스털 샹들리에, 멋진 조각들, 그림,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흑단과 상아로 만든 조각품 등이 있다. 1903년부터 1906년까지 조성된 무기의 방에는 4,000점에 달하는 유럽과 동양의 무기류가 전시되어 있다. 16~17세기 독일 무기만 따로 모아놓은 방도 있는데,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유리창이 인상적이다. 또한 유럽 미술가들의 회화 작품 2,000여 점이 소장되어 있다.
♣ 루마니아 당국은 최근에 펠레슈 성을 루마니아의 前王 미하이에게 돌려주었는데,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재위했던 유럽의 지도자들 중 지금까지 살아 있는 최후의 인물이다. 따라서 이 아름답고 로맨틱한 성은 다시 한번 루마니아 왕실의 소유가 되었다.
▼ 페레슈성 투어를 마치고 부카레스트로 향한다. 부카레스트 가는 도중 어느 시골에서 석유를 퍼 올리고 있는 시추선을 보게되는데, 아무데나 파면 나온다는 석유(?) 부러운 나라~ㅋ
▼ 부카레스트 시내투어.
[개선문] 1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하여 파리의 개선문을 본떠 세웠다는 개선문, 파리의 개선문보다 3m가 더 높은 37m 현재 수리중(?)
▼ [혁명광장] : 혁명의 발단이 된 이 광장에서 차우세스키 연설 당시 그를 규탄하던 시민을 발포하여 죽은 현장기념탑
▼ 혁명광장에 있는 구 공산당 본부 건물과 조형탑 1989년 민주화혁명의 물결이 노도와 같이 번지자, 그에 놀란 챠우세스크가 군중을 동원해서 저앞에 보이는 대통령궁 테라스에서 연설을 하고자 했는데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되려 그에게 야유와 비난이 퍼부어지는 자리로 변하게 된다. 이후 10만 군중이 모이는 대규모 반대집회가 열리자 국방장관은 자살을 하고 챠우세스크는 도망을 가지만 경찰에 잡혀 수감된 후 1시간 동안의 재판을 통해 성탄절에 부부가 함께 사형되기에 이른다.
▼ 혁명광장 옆의 국민적 추앙을 받고 있는 카롤 1세의 기마상
▼ 전형적인 루마니아 정교회 - 크레출레스쿠 정교회(Kretzulescu Church) 크레출레스쿠 정교회는 전형적인 루마니아 정교회로 이 지역의 귀족이며 대법관이었던 이오르다케 크레출레스쿠(Iordache Kretzulescu)와 그의 아내 사프타(Safta)가 기부하여 세웠다.
▼ 인민궁전 (대통령궁 과 국회의사당으로 사용한다) 예전에는 차우세스쿠 궁전 차우세스쿠가 1980년대 어느 날 북경과 평양을 다녀와서 모종의 감명을 받았던 듯 25,000명의 병력을 동원해서 5 년간 밤낮으로 지은 건물, 그런데 1989년 민주화혁명을 맞아 완공되지 못했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전체가 사용된 적이 없으며, 최소 2,000개의 방이 비어있는 상태로 남아있다고 한다. 미국의 펜타곤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건물.
▼ 부카레스트의 시내 거리 표정
▼ 이번 발칸반도 여행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어본 한식(육개장)
▼ 유채밭 평원을 지나 숙식장소(rin hotel)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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