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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春稚 第二의 旅程
가내행사

평산신씨

by 춘치 2012. 1. 27.

 평산신씨 본관 유래 (平山申氏 本貫 由來)

 

 

한국(韓國)의 가족제도(家族制度)에서

성씨(姓氏)와 본관(本貫)의 유래(由來)

시조(始祖) 또는 중시조(中始祖)의

출생지(出生地)를 본관(本貫)으로 삼고

있다.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평산신씨

(平山申氏)는 고려(高麗) 태조(太祖)가

영여(榮與)의 표창(表彰)으로 사관

(賜貫)한 것이다. (平山申氏, 開城王氏,

長興高氏) 평산신씨(平山申氏)의 시조

(始祖)이신 신숭겸(申崇謙) 장군(將軍)

은 신라(新羅) 말엽(末葉),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王建)을 추대(推戴)하여

고려(高麗)를 창건(創建)한 개국원훈

(開國元勳)으로 고려(高麗) 태조(太祖)

10년 (서기 927년) 후백제(後百濟) 견훤군

(甄萱軍)과의 공산전투(公山戰鬪)에서

적군(敵軍)에 포위(包圍)를 당해 전세

(戰勢)가 몹시 위급(危急)하게 되자 용모

(容貌)가 태조(太祖)와 흡사한 공(公)은

태조(太祖)를 숨기고 대신(代身)하여

전투(戰鬪)를 지휘(指揮)하다 대의(大義)

에 몸을 바치고 장렬(壯烈)히 전사(戰死)

하신 분으로서 역사(歷史)에 빛나는

위국충절(爲國忠節)의 위훈(偉勳)으로

고려(高麗)는 후삼국(後三國)을 통일

(統一)하여 한반도(韓半島)에 통일국가

(統一國家)의 위업(偉業)을 성취(成就)하게 하신 분이다.

고려(高麗) 태조(太祖)는 우리 시조(始祖)의 위대(偉大)한 상무정신(尙武精神)과 위국충절(爲國

忠節)을 귀감(龜鑑)으로 삼기 위해 고려(高麗) 태사(太師)로 봉하고 장절공(壯節公)으로 증시(贈諡)

하였으며 그 위국충절(爲國忠節)의 명복(冥福)을 빌기 위해 지묘사(智妙寺)를 세워 체백(體魄)을

봉안(奉安)하고, 적군(敵軍)이 태조(太祖)로 알고 두상(頭上)을 가져갔으므로 태조(太祖)는 장군

(將軍)의 두상(頭上)을 금(金)으로 만들어 도굴(盜掘) 당하지 않도록 봉분(封墳)을 셋으로 하여

예장(禮葬)하였다.

천여년(千餘年)이 지난 지금 이 묘소(墓所)는 강원도(江原道) 지방문화재(地方文化財) 기념물

(記念物)로 지정(指定)되어 성역화(聖域化) 되었고, 전국(全國) 80여만(余萬)의 평산신씨(平山申氏)

후손(後孫)들이 춘추(春秋)로 향사(享祀)를 봉행(奉行)하여 시조(始祖)의 위훈(偉勳)을 추모(追慕)

하고, 몸 바쳐 위국충절(爲國忠節)을 실천(實踐)한 장절공(壯節公)의 후예(後裔)로서 그 유업(遺業)

을 계승(繼承)하고 있다.


                    사 안 도 (射 雁 圖)

 

始祖
숭겸(崇謙)

?-927(고려 태조 10)

본관은 평산(平山). 처음 이름은 능산(能山). 시호(諡號:돌아가신 후에 생전의 공덕을칭송하여

임금이 추증하던 이름)는 장절(壯節:절의가 굳세다). 평산신씨(平山申氏) 시조(始祖). 전라도

곡성현(谷城縣) 출신으로 뒤에 춘천에 옮겨와서 살게 되어 고려사열전에는 광해주(현재 춘천)

사람이라 하였다.
  신숭겸은 몸집이 장대하고 무용(武勇)이 뛰어나 궁예(弓裔) 말년(918년 6월)에 홍유(洪儒), 배현경

(裵玄慶), 복지겸(卜智謙)과 함께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王建)을 추대, 고려를 창건하여 개국원훈

(開國元勳) 대장군(大將軍)이 되었고, 서기 919년(고려 태조 2년) 태조를 따라 사냥을 갔다가

삼탄(三灘)에 이르러 점심 식사를 하였다. 마침 기러기 세 마리가 공중을 빙빙 돌거늘,

태조가 “누가 저 기러기를 쏘겠는가?” 하니

신숭겸이 “제가 쏘아 보겠습니다” 하였다.

태조가 활과 화살, 안장과 말을 주니

신숭겸이 “몇 번째 기러기를 쏘리까?” 하거늘

태조가 웃으며 “셋째 기러기의 왼쪽 날개를 쏘라”고 하였다.

신숭겸이 명령에 따라 쏘아서 과연 꼭 적중시키기를 명한 바와 같이 하니,

태조가 가상히 여기고 감탄하여 평주(平州:황해도 평산의 옛이름)로 관향(貫鄕:시조의 고향)

을 삼게 하고 기러기를 쏜 근방의 전답 3백결(三百結)을 아울러 하사하여 대대로 그 조세를 받아

먹게 하였으며, 그 땅을 궁위(弓位)라고 이름하였다. 927년에 견훤이 고울부(高鬱府:현재 영천)

를 습격한 뒤 신라 왕도로 쳐들어가 경애왕을 죽이고 갖은 만행과 약탈을 감행하게 되었다.
  고려 태조는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분개하여 사신을 신라에 보내어 조제(弔祭:슬픔을 나타내는

인사와 제사를 지냄)하는 동시에 친히 정기(精騎:매우 강한 기병) 5,000을 거느리고 대구의

공산(公山) 동수(桐藪)에서 싸우다가 포위를 당해 전세가 몹시 위급하게 되자 얼굴 모양이 태조

(太祖)와 흡사한 공(公)은 태조를 애수(나무숲)에 피신케 한 후 어거(御車:임금이 타는 수레)를

대신하여 타고, 김락(金樂)과 더불어 힘써 싸우다가 대사순절(代死殉節)하니 이로써 태조는

간신히 위기를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태조는 장군의 죽음을 매우 슬퍼하였으며 친히 제례(祭禮)를 행하고 춘천 소양강 북쪽 비방동

(悲芳洞)에 예장(禮葬)을 했는데 금으로 새긴 두상을 보호하기 위하여 삼분(三墳)의 의총(疑塚)

만들었다 한다.
  묘하(墓下)에 수호군(守護軍) 30호(戶)를 두고 묘소 곁에 원당(願堂)을 두었으며 순절지인 대구

지묘사(智妙寺)를 세워 명복(冥福)을 빌게 하였으며 황해도 평산 태백산성에는 태사사

(太師祠)를 창건하고 철상(鐵像)을 주조하여 봉안했다.
  태조가 공의 순절을 심히 애도하여 시호를 장절(壯節)이라 하고, 공의 아우 능길(能吉)과 아들

보장(甫藏)을 원윤(元尹:고려때 문무관의 위계로 정5품(正五品)에 해당)으로 삼고 벽상(壁上)

호기위(虎騎衛:용맹스럽게 앞장서서 호위한 기장) 태사(太師:고려때 정1품(正一品)의 품계)

개국공(開國公:나라 세움에 공이 큼) 삼중대광(三重大匡:고려때 문관 정1품(正一品)의 품계)

의경익대(毅景翊戴:지조가 굳세어 우러러 볼만하며 임금을 받들어 추대함) 광위이보(匡衛怡輔:

바르게 호위하고 기꺼이 보좌함) 지절저정(砥節底定:절조가 지극하다고 정함) 공신(功臣)으로

추봉(追封)되었다.

고려 태조 묘정(廟庭)과 숭의전(崇義殿)에 배향되고, 태사사(太師祠) 덕양사(德陽祠) 동양서원

(東陽書院) 표충사(表忠祠) 도포서원(道浦書院) 율리사(栗里祠) 경백사(景白祠) 순절단(殉節壇)

용산단(龍山壇) 영각유허(影閣遺墟) 춘천방동영당(春川芳洞影堂) 장군단(將軍壇)에서 향사

(享祀)한다.

탄생지인 전남 곡성군 목사동면 구룡리에 있는 용산단(龍山壇) 경내, 순절지(殉節地)인 대구

동구 봉무동 파군재(破軍재) 삼거리, 묘소가 있는 강원도 춘천시 서면 방동 경내에 동상(銅像)

이 모셔져 있다.

 

평산 신씨 본관지 연혁(本貫地沿革)

    - 황해 평산(平山)

 

 평산 신씨 집성촌

 

- 경북 칠곡군 약목면 복성동

- 강원도 이천군 방우면 가려주리

- 경남 밀양군 무안면 중산리

- 충남 서천군 비인면 성산리

- 경남 남해군 서면 중현리

- 충남 예산군 봉산면 대지리

- 황해도 금천군 구이면 관문리

- 전북 임실군 신덕면 수천리

- 평북 영변군 남송면 봉지동

 

항 렬 도 (行 列 圖)

항렬은 계대(系代)와 윤서(倫序)를 나타내는 종규(宗規)이니 반드시 준수(遵守)할 것이며,

작명시(作名時) 선조(先祖)의 휘자(諱字)를 범(犯)치 말 것이다.

평산신씨의 항렬자는 31세 이전에는 파별로 따로 쓰였으나 32세 부터는 같이 쓰기로 하였다.

홀수 세대는 이름의 첫 자를, 짝수 세대는  이름의 마지막 자를 항렬자로 한다.

32세

33세 34세 35세 36세

○  영균(均)
○  규(圭)
○  노(老)
○  곤(坤)

현(鉉)종건  ○
언(彦)  ○
윤(允)  ○
종(鍾)  ○

○  동철(澈)
○  식(湜)
○  순(淳)
○  영(泳)

동(東) 운 ○
상(相)  ○
영(榮)  ○
주(柱)  ○

○  섭(燮)
○  용(容)
○  항(恒)
○  환(煥)

37세 38세 39세 40세 41세

재(載)  ○
숙(璹)  ○
기(基)  ○
배(培)  ○

○  호(鎬)
○  진(鎭)
○  일(鎰)
○  련(鍊)

제(濟)  ○
준(濬)  ○
원(源)  ○
홍(洪)  ○

○  근(根)
○  화(和)
○  병(秉)
○  집(集)

성(性)  ○
충(忠)  ○
찬(燦)  ○
덕(德)  ○

42세 43세 44세 45세 46세

○  용(用)
○  익(翼)
○  중(重)
○  식(軾)

원(元)  ○
완(完)  ○
극(棘)  ○
욱(旭)  ○

○  필(弼)
○  우(雨)
○  남(南)
○  설(卨)

단(段)  ○
승(承)  ○
제(齊)  ○
녕(寧)  ○

○  무(武)
○  빈(斌)
○  성(成)
○  무(茂)

47세 48세 49세 50세 51세

홍(弘)  ○
세(世)  ○
경(卿)  ○
기(起)  ○

○  염(廉)
○  용(庸)
○  경(慶)
○  강(康)

재(宰)  ○
화(華)  ○
상(常)  ○
행(幸)  ○

○  정(廷)
○  승(升)
○  연(延)
○  성(聖)

규(揆)  ○
등(登)  ○
계(癸)  ○
봉(奉)  ○

 

31세 이전의 파별 대표적인 항렬은 다음과 같다.

 구  분

27세

28세

29세

30세

31세

광(光)

주(柱)

대(大)

주(周)

의(義)

광(光)

종(宗)

석(錫)

한(韓)

환(煥)

일변(日邊)

범(範)

영(永)

상(相)

희(熙)

언(彦)

성(成)

명(命)

목변(木邊)

희(熙)

악(岳)

광(匡)

동(東)

기(奇)

희(熙)

응(應)

종(宗)

선(善)

영(永)

수(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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