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제작 후 2차례 개조 증축 여부 원인 규명에 중요<사진:>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해상에서 인천을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6825t급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이틀째인 17일 오전 사고해역에서 해군과 해양경찰 대원 등이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다. 2014.4.17/뉴스1 것으로 나타났다.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세월호가 1994년 6월 나가사키현에서 처음 건조됐을 당시 총 배수량이 5997t이었지만, 한달 뒤 6586t으로 589t 증축됐다고 밝혔다. 이후 세월호는 가고시마현과 오키나와현 사이에 자리한 아마미섬을 거점으로 둔 해운회사 ‘마루에 페리’ 소속의 ‘페리 나미노우에(파도의 위)’라는 이름을 달고 2012년 10월까지 18년 동안 가고시마와 오키나와 사이의 여러 낙도를 잇는 여객선 구실을 했다. 건조 당시엔 바닥에 가장 가까운 1층에 화물칸, 2층에 승용차 200대분의 차고, 3층에 식당·매점, 3∼5층에 객실이 설치돼 있었다. 됐다. 이와 함께 승객 정원도 일본에서 운행하던 당시 804명보다 117명이 많은 921명으로 늘어났다. 현재 세월호의 침몰 원인이 배가 급하게 방향을 트는 과정에서 과다 적재된 화물이 한쪽으로 쏠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어서 세월호의 증축 여부는 사고 원인 규명에 상당히 중요한 정보로 작용할 전망이다...
▲ 1970년 12월14일 전남 여수시 소라도 근처에서 발생한 여객선 남영호(862t) 침몰 사고는 사망자가 무려 319명에 달했다. 정원(290명)보다 많은 331명을 태웠고, 12명만 살아남았다. 갑판에 무리하게 쌓아놓은 감귤상자 등이 강풍에 무너지면서 선체가 기울어 침몰했다. ★*… 1974년 2월22일 경남 통영시 장좌섬 앞바다에서는 해군 예인정(YTL수송정)이 침몰해 훈련병 159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순신 장군 위패가 있는 충렬사를 참배하고 돌아가던 중이었다. 정원의 갑절인 300여명을 태웠고, 모함 200m 앞에서 속력을 줄이지 못하고 방향을 틀다가 가라앉았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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